- 팔십종수
- 김미정 / 2018.12.14
《팔십종수(八十種樹)》
박목월 선생의 수필 '씨 뿌리기'에 호주머니 안에 은행 열매나 호두를 넣고 다니며 학교 빈터나 뒷산에 심는 노교수 이야기가 나온다.
이유를 묻자, 빈터에 은행나무가 우거지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. 언제 열매가 달리는 것을 보겠느냐고 웃자 "누가 따면 어떤가. 다
사람들이 얻을 열매인데" 하고 대답했다.
여러 해 만에 그 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키만큼 자란 은행나무와 제법 훤칠하게 자란 호두나무를 보았다.
"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(六十不種樹)"고 말한다. 심어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보겠기에 하는 말이다.
송유(宋兪)가 70세 때 고희연(古稀宴)을 했다. 귤(柑) 열매 선물을 받고 그 씨를 거두어 심게 했다. 사람들이 속으로 웃었다. 그는 10년 뒤 귤 열매를 먹고도 1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떴다.
황흠(黃欽)이 80세에 고향에 물러나 지낼 때 종을 시켜 밤나무를 심게 했다. 이웃 사람이 웃었다. "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요?"
황흠이 대답했다. "심심해서 그런 걸세. 자손에게 남겨준대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?" 10년 뒤에도 황흠은 건강했고, 그때 심은 밤나무에
밤송이가 달렸다. 이웃을 불러 말했다. "자네 이 밤맛 좀 보게나. 후손을 위해 한 일이 날 위한 것이 되어 버렸군."
홍언필(洪彦弼)의 아내가 평양에 세 번 갔다. 어려서 평양감사였던 아버지 송질(宋軼)을 따라갔고, 두 번째는 남편을 따라갔으며, 세 번째는 아들 홍섬(洪暹)을 따라갔다.
아내로 처음 갔을 때 장난삼아 감영에 배를 심었고, 두 번째 갔을 때는 그 열매를 따 먹었다. 세 번째 갔을 때는 재목으로 베어 다리를
만들어 놓고 돌아왔다.
세 이야기 모두 '송천필담(松泉筆譚)'에 나온다.
너무 늦은 때는 없다.
예순만 넘으면 노인 행세를 하며 공부도 놓고 일도 안 하며 그럭저럭 살다 죽을 날만 기다린다. 100세 시대에 이런 조로(早老)는 좀
너무하다.
씨를 뿌리면 나무는 자란다. 설사 내가 그 열매를 못 딴들 어떠랴.